[가문의 뿌리] 오늘의 울산이 있게 한 '울산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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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오늘의 울산이 있게 한 '울산 박씨'
  • 양민규 기자
  • 승인 2024.0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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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박씨(蔚山朴氏) 시조 윤웅과 지금의 울산의 지역적 이미지를 조형화하여 구상하였다.전체적인 형상은 한글 울산 글자를 조형적으로 해석하여 울산박씨의 이미지를 담고자 하였다.상부는 오석 구 형태는 문중의 희망과 미래를 상징하고, 지역의 대표적인 고래의 형상과, 문중의 학산서원의메시지를 담았다.미역바위는 울산광역시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울산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울산박씨를 대표하는미역바위 형상과 산과 바다의 파도형상으로 이미지화 하였다.선조에 대한 역사성과 존엄성을 부각시키고 예술성을 극대화 시키고자 하였다.본 작품으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창조, 발전시키고 문중의 위업(衛業)과 후손들의 자긍심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울산박씨(蔚山朴氏) 시조 윤웅과 지금의 울산의 지역적 이미지를 조형화하여 구상하였다. 전체적인 형상은 한글 울산 글자를 조형적으로 해석하여 울산박씨의 이미지를 담고자 하였다. 상부는 오석, 구 형태는 문중의 희망과 미래를 상징하고, 지역의 대표적인 고래의 형상과, 문중의 학산서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미역바위는 울산광역시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울산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울산박씨를 대표하는 미역바위 형상과 산과 바다의 파도형상으로 이미지화하였다. 선조에 대한 역사성과 존엄성을 부각시키고 예술성을 극대화 시키고자 하였다. 본 작품으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창조, 발전시키고 문중의 위업과 후손들의 자긍심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울산박씨는 본관이 흥려(興麗)였으나 조선 태종 13년(1413)에 지명이 흥려부(興麗府)에서 울산
(蔚山)으로 개칭되었다.

울산박씨의 시조는 흥려백 시호 장무공 윤웅(興麗伯諡號莊武公允雄)이다.

공은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신학성장군이라 칭하여 신라 하곡현(울산중구학성)일대를 통치하던 호족장이었다. 고려개국(918)시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에 올랐고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통치하던 동진(東津), 하곡(河曲), 동안(洞安),  우풍(虞風),  임관(臨關) 등 5개 군현을 통합하여 흥려부(興麗府)로 승격(울산시는 이날 10월 1일을 울산 시민의 날로 제정함)시켜 공을 흥려백(興麗伯)에 봉작하여 숭록대부대장군에 배명되고 통합 삼한 벽상공신에 녹훈되어 통치하던 전 지역을 사패지(賜牌地)로 하사받았다.

사패지 일부인 미역바위 12구중 1구가 천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존되어 2001년 12월 20일 울산광역시 지방문화재(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종중에서 관리하며 여기서 생산되는 미역을 매년 공의 향제시 제수(享祭時祭需)로 진공(進貢)하고 있다.

고려 문종 이래 공의 신주를 성황당에 모셔 계변천신(戒邊天神)으로 숭앙하여 수호신으로 받들고 있다. 그러므로 공은 오늘의 울산을 있게 한 원훈이며 그 공업은 동해의 물결 아래 저 곽암(藿巖)과 함께 천여년 세월 속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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