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박씨는 본관이 흥려(興麗)였으나 조선 태종 13년(1413)에 지명이 흥려부(興麗府)에서 울산
(蔚山)으로 개칭되었다.
울산박씨의 시조는 흥려백 시호 장무공 윤웅(興麗伯諡號莊武公允雄)이다.
공은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신학성장군이라 칭하여 신라 하곡현(울산중구학성)일대를 통치하던 호족장이었다. 고려개국(918)시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에 올랐고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통치하던 동진(東津), 하곡(河曲), 동안(洞安), 우풍(虞風), 임관(臨關) 등 5개 군현을 통합하여 흥려부(興麗府)로 승격(울산시는 이날 10월 1일을 울산 시민의 날로 제정함)시켜 공을 흥려백(興麗伯)에 봉작하여 숭록대부대장군에 배명되고 통합 삼한 벽상공신에 녹훈되어 통치하던 전 지역을 사패지(賜牌地)로 하사받았다.
사패지 일부인 미역바위 12구중 1구가 천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존되어 2001년 12월 20일 울산광역시 지방문화재(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종중에서 관리하며 여기서 생산되는 미역을 매년 공의 향제시 제수(享祭時祭需)로 진공(進貢)하고 있다.
고려 문종 이래 공의 신주를 성황당에 모셔 계변천신(戒邊天神)으로 숭앙하여 수호신으로 받들고 있다. 그러므로 공은 오늘의 울산을 있게 한 원훈이며 그 공업은 동해의 물결 아래 저 곽암(藿巖)과 함께 천여년 세월 속에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