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 탄방동에 위치한 도산서원(道山書院)은 만회 권득기(1570~1622)와 그의 아들인 탄옹 권시(1604~1672) 두 분의 학문과 학덕을 기리고, 이들 부자를 제사지내며 강학하는 곳으로 삼고자 1691년(숙종 17) 세워졌다.
본래 탄방동은 탄옹 선생이 후학들을 위해 세운 강학소가 있었던 곳으로, 조선 후기 우암 송시열과 쌍벽을 이뤘던 소론의 영수 윤증(1629~1714)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배출됐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1871년에 철폐되었는데 당시 충청감사가 보낸 편지에서 도산서원은 훼철 대상에서 빠졌다는 것을 뒤 늦게 알았다. 1921년 서원 자리에 단소(壇所)를 세우고 봄가을로 제향을 지냈다. 1968년에 사당인 함덕사(涵德祠)를 세웠고, 1973년에는 옛 서원이 자리했던 동편 언덕에 안동권씨 문중이 중심이 되어 도산서원을 다시 세웠다.
배향인물인 만회 권득기는 광해군 때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탄옹 권시는 현종 때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서원에서는 봄가을로 유림들이 모여 제향을 올린다.
인근에는 권시의 묘와 숭모각이 있는데, 이곳은 만회 권득기 선생의 문집이 새겨진 판목(板木) 328판과 탄옹 권시 선생의 문집 판목 282판이 보관되고 있는 장판고이다.
만회 선생의 문집인 ‘만회집’ 판목은 만회 선생의 장자인 함창공이 1635년(인조 13)에, 증손자인 유회당 권이진이 1712년(숙종 38)에 각각 제작하였으며, 판재는 배나무와 물오리나무를 사용했다. 탄옹 선생의 문집인 ‘탄옹집’ 판목은 탄옹 선생의 장자인 무수옹 권기가 제작하였으며, 판재는 물오리 나무를 사용하였다.
이들 판목은 당초 도산서원에 보관되다가 서원 철폐 후 대전 중구 무수동 유회당 건물 경내에 있는 장판각에 유회당 권이진 선생 문집 판목과 같이 보존되었으며, 1987년 안동권씨 탄옹공파종중에서 숭모각이 세워진 후 다시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도산서원 뒤에 위치한 1930년대에 지은 재실 경모재가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솟을대문이 있는 행랑채를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인다. 이와 직각으로 살림채와 창고가 있고 경모재 오른편에는 전사청 건물이 위치한다.
경모재는 정면4칸, 측면3칸으로 전후 퇴칸을 둔 홑처마 팔작지붕을 얹었다.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로 하고 양측에는 온돌방을 두었는데 온돌방 정면은 툇마루가 대청에 이어져 있으며, 퇴칸 양측면을 막아 널문을 두었다.
동측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조그만 전사청이 경모재를 향하고 있고, 경모재 앞에 관리인이 거처하고 있는 살림채가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이 건물은 전면에 퇴칸을 둔 일자형 평면으로 남측에 퇴칸이 있는 부엌을 두고 이어서 2칸의 방과 별도의 출입문이 있는 방을 두었다. <도움 : 대전시 문화유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