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뿌리] 마한부터 조선까지 역사의 중심 ‘고부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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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뿌리] 마한부터 조선까지 역사의 중심 ‘고부이씨’
  • 구태경 기자
  • 승인 2020.07.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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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침산동,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뿌리공원은 1997년 개장한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이다. 현재 12만 5000㎡의 부지에 240여 문중의 성씨조형물과 함께 전망대, 잔디광장, 산림욕장, 수변무대 등 다양한 시설이 조성돼 있어 연인원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뿌리와 효문화의 총집산이 되고 있다. 뿌리공원에 조성된 성씨조형물을 중심으로 각 문중의 유래와 전통을 살펴본다.

'생의 찬미'는 고부이씨(古阜李氏) 선조의 얼과 기상으로 후세에 이르는 자손만대의 화목된 번영과 영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제작 되었다. 좌우의 승천하는 크고 작은 두 기둥은 한자의 사람인(人)에서 뜻하는 남(男)과 여(女), 음양의 조화로 고부이씨들이 하나가 돼 미래를 밝히려는 의지를 표현했다.

이경조(李敬祖) 고려 정종 서기 1035년 때 고부(古阜)에서 탄생해 문종 1047∼1083때 한림학사 서장관이 돼 봉명사신으로 송나라에 왕래하고 숙종 1096∼1105때 국자감판사 문하시랑 평장사 검교첨의 정승 추충보정공신으로 여산군을 봉하고 시호는 문헌이라 했다.

이조 정조 임인 1782년 창보에 고려검교 성균대사성 첨의찬성사 정승이라하고 가첩에는 단대사성으로 기록돼 제가계단을 고증했다.

고부가 세거지로 고부 두승산 남록에 이정승 묘등이 있으며 공의 이상 세계는 없으니 고려시대의 사성이다.

공의 형 이경선(李敬先)이 있어 첨의정승 일원랑이니 파계무거해 별보에 기재하다 문헌은 고려사 세가별전, 동국유현록, 한국성씨대관, 한국인의 족보에 있다.

순종후 무진 1928년 5차 수보시에 전북 부안군 줄포면 목상리 561번지 산에 사단비를 설립하고 승지 안동 김녕한(金寗漢)이 비음기를 찬술 고부읍지 부안읍지 제단편에 상세히 기록하고 1969년 정읍시 소성면 주천리 산6에 16세손 고려9충신 중랑장 초(初)공의 단묘영역 서편 국도변에 세적비를 건립 후 1989년 문학박사 류재영(柳在泳)이 비문을 찬술 신도비를 건립했다.

원래의 정읍현은 조그만 소읍이었으나 고부는 삼국 이래 서해안의 요진으로 정치 군사의 중심지다.

고부는 마한 시대 고비이국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며 백제시대에는 오방성 중의 하나인 중방고사성이 있던 곳으로 고사부리군의 관청이 정치군사의 중심지였다.

이후 757년 신라 경덕왕16년에 비로소 고부로 일컬었다. 서기 936년 고려 태조19년에는 고을 이름을 영주(瀛州)로 개칭하고 관찰사를 두었고 이때 정읍, 태인, 인의, 고창, 흥덕, 부안등 고을이 영주에 속했으며 그 터가 현 고부면 입석리다.

951년 고려광종2년에는 안남이라 일컬었고 도호부를 두었으며 1019년 고려현종 10년에 다시 고부로 개칭하고 고을터를 고부리 성황산으로 옮겼다.

1894년 고종 31년 갑오동 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1914년4월1일 군을 통폐합에 의해 정읍군에 속하고 현재 고부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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