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25. 충남의 선비들, 항일의병 선봉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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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25. 충남의 선비들, 항일의병 선봉에 서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20.02.0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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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홍성 홍주의사총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자 전국의 유생과 농민을 중심으로 일본의 침략에 반발하는 의병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참여한 사람들을 ‘항일의병’이라 부른다.

항일의병운동은 1894년 8월 일본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시작됐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자 항일의병운동은 더욱 격렬해졌다. 1910년 일제의 식민지가 된 후에도 항일의병운동은 계속되었다.

항일의병이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활동한 지역이 충청남도이다. 그중 청양, 예산, 홍주의 선비들이 중심이 되어 벌인 ‘홍주의병’이 가장 유명하다. 청양과 홍주의 선비들은 1895년 12월 3일 김복한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홍주성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튿날 함께 의병을 일으킨 홍주 목사 이승우가 배신하여 의병을 이끌던 지도부를 잡아들이면서 흩어지고 말았다.

1905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홍주의병이 다시 일어났다. 정산(충남 청양군 정산면)에 살던 민종식이 의병장이 되어 3월에 홍주성의 일본군을 몰아냈다. 하지만 5월에 대포를 앞세운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300명이 넘는 의병이 목숨을 잃었다.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

홍주 외에도 서산, 당진, 공주, 논산, 연기, 대전 등 충청남도 각지에서 소규모 의병부대를 만들어 일본에 맞서 싸웠다. 충청남도 당진의 소난지도 전투에서는 100명이 넘는 의병이 죽었다. 소난지도 전투는 전국에서 홍주성 전투 다음으로 큰 희생을 치른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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