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15. 조선시대 충신의 상징이 된 성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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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15. 조선시대 충신의 상징이 된 성삼문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1.2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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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성삼문은 1418년 지금의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라고 세 번 물었다고 해서 이름을 ‘삼문(三問)’으로 지었다고 한다.

성삼문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글재주가 뛰어나 과거에 장원 급제한 뒤 집현전의 학자가 되었다. 나중에는 책을 여러 권 펴내고,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에 있는 성삼문 선생 유허비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에 있는 성삼문 선생 유허비

세월이 흘러 세종대왕이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왕에 오른 문종도 몸이 약해서 2년 남짓 만에 죽었다. 문종의 아들 단종이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 그러자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왕이 되기 위해 1453년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계유정난’이라 부른다.

신하들은 단종을 지키려는 자와 수양대군을 따르는 자로 갈라졌고, 수양대군은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없애고 1455년 조선의 7대 왕에 올랐다. 수양대군이 왕이 된 이듬해, 단종을 지키려는 신하들은 목숨을 걸고 힘을 합쳤다.

충남 논산군 가야곡면 양천리에 위치한 노은단. 성삼문 선생과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노은서원이 철거되면서 위패를 묻고 단을 만들어 제사를 모신다.
충남 논산군 가야곡면 양천리에 위치한 노은단. 성삼문 선생과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노은서원이 철거되면서 위패를 묻고 단을 만들어 제사를 모신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 집현전 학자들과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 왕의 호위장수 유응부 등이 집현전에 모여 수양대군을 없애고, 단종을 다시 왕으로 모시기 위한 비밀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작전이 알려지면서 이들은 모 두 목숨을 잃고, 그 가족까지 역적으로 몰려서 죽거나 집과 재산을 빼앗기고 노비가 되었다.

이들은 비록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지만, 나중에 자신이 모시던 단종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을 다한 신하로 존경받았다. 그중에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는 사육신이라 불리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충신이 되었다. <도움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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