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6. 왕건, 천안을 삼국통일 전진기지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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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6. 왕건, 천안을 삼국통일 전진기지로 삼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0.1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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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 영정
고려 태조 왕건 어진

통일신라 말 충남지역은 후백제와 고려 사이에 자리한다. 후백제 왕 견훤과 고려 왕 왕건은 조금이라도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충남은 금강을 기준으로 북쪽은 고려, 남쪽은 후백제의 땅이 되었다.

고려는 후백제와 팽팽하게 맞서다가 929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벌어진 고창군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승리의 기회를 잡은 왕건은 930년 천안에 도독부를 설치했다.

후백제와 고려의 도읍인 전주와 개경 사이에 있던 천안은 공격과 방어를 위해 중요한 지역이다. 천안도독부를 설치하고 대규모 군대를 보낸 왕건은 후 백제의 공격에 대비하는 한편, 틈을 봐서 전주까지 바로 공격하려고 했다.

후삼국 통일과정
후삼국 통일과정

전설에 따르면 왕건은 “천안이 삼국의 중심으로 다섯 마리 용이 구슬을 놓고 다투는 모양이므로, 이곳에 큰 관청을 설치하면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천안도독부 설치를 결심했다. 당시 왕건이 천안 일대를 살펴보기 위해 오른 산이 지금의 태조산이라고 한다.

935년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고, 1년 뒤 왕건은 군대를 천안에 모아 후백제를 공격했다. 936년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를 크게 이긴 왕건은 황산군(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의 두 번째 왕인 신검에게 항복을 받았다. 이때부터 후삼국시대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고려시대를 열었다. 신라와 후백제를 통일하고, 거란에 멸망한 발해 유민까지 받아들인 고려는 통일신라 때보다 넓은 영토를 거느렸다.

충남 논산 개태사 전경
충남 논산 개태사 전경

한편, 왕건은 후백제에게 항복을 받은 자리에 이제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큰 절을 세운다. 절 이름도 ‘평화의 시대를 열다’라는 뜻으로 열 개(開), 편안할 태(泰) 자를 써서 개태사라고 지었다. 크고 화려하게 지은 개태사는 공사 기간이 5년이나 걸렸다.

절이 완성되자, 태조 왕건이 직접 와서 낙성 법회를 열었다. 개태사는 불교를 숭상하는 고려시대 내내 나라를 지키는 호국 사찰로 높은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시대에 쇠퇴하여, 나중에는 건물이 모두 무너지고 절도 사라졌다.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

지금은 개태사 터에 남은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철확, 석조, 청동반자가 옛날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도움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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