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20. 김장생, 조선 예학의 기틀을 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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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20. 김장생, 조선 예학의 기틀을 다지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2.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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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사계 김장생 선생
사계 김장생 선생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다. 유교에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질서와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을 예(禮)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관혼상제부터 인사하고 먹고 입는 모든 것을 정해진 예에 따라야 했다. 그래서 예를 연구하는 예학은 조선시대에 중요한 학문이었 고, 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장생은 조선시대 예학을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다. 1548년 태어나 1631년 죽을 때까지 연산(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살면서 오래전 중국에서 들어온 예절을 조선의 상황에 맞게 고치기 위해 연구하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김장생이 살던 시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쟁과 양반들의 권력 다툼으로 매우 혼란했다. 김장생은 이러한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종합 생활 예절서인 《가례집람》, 특별한 상황에 지켜야 할 예절을 적은 《의례문해》, 왕족의 결혼을 비롯해 나라에서 큰 행사를 치를 때 따라야 할 예절을 다룬 《전례문답》, 신의경이 쓴 죽음과 관련된 예절을 다룬 글에 설명을 덧붙인 《상례비 요》 등 다수의 책을 썼다.

김장생 선생을 모신 논산 돈암서원
김장생 선생을 모신 논산 돈암서원

조선시대 예학은 김장생이 아들 김집과 여러 제자에게 학문을 전하면서 크게 발전했다. 학자이자 정치가로 조선 사회를 주름잡은 송시열, 송준길, 유계, 윤선거, 이유태 등이 모두 김장생의 제자다. 지금의 대전, 공주, 논산, 금산 등 충청도를 기반으로 활동한 학자들로, 이들 밑에서 공부한 제자가 많아지면서 충청도는 김장생 이후 예학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 되었다.

충청도의 선비는 과거 공부나 벼슬보다 예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선비 중의 선비’로 불렸다. 오늘날 충청도를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이라 부르는 것도 예에 기초하여 선비정신을 발휘한 양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움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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