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이제 초겨울이다
상태바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이제 초겨울이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19.11.25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호.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행정고시, 구청장, 국회의원, 공기관 임원, 교수까지, 평생 변화무쌍한 삶을 개척해온 그는 2019년 3월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통해 동대전농협 조합장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길에 들어섰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인생의 결실을 거두고 다시 흙으로 돌아온 그. 그러나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다른 열매를 위한 새로운 싹도 틔웠다. 초보 농군의 길에 들어선 임영호 조합장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일기장을 들춰본다.

 

이제 겨울이다. 한해를 돌아보면 농사짓는 것과 같이 흙에서 하는 일들은 언제나 적당한 시기가 있다. 이것은 자연의 순환을 지키는 일이다.

병아리 같은 유치원 아이들은 무 뽑는 행사를 좋아한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무는 아이들에게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그래서 무를 심는다. 무씨는 아주 작다. 손으로 하나 집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렇게 작은 씨가 땅에 뿌리를 박고 아이들 머리통만큼 커가는 모습은 신비스럽다.

지난 8월 15일에 가을 무를 두 줄이나 심었다. 정성껏 뿌린 씨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몇 개의 싹만 띄우고 싹이 돋지 않았다. 밤 기온이 25도로 높았다. 하긴 사람조차도 잠을 자기가 어려운데 식물도 살기가 어려웠을게다. 나는 실망한 나머지 1주일 기다리다가 8월 말쯤 다시 씨를 뿌렸다. 며칠 만에 신기하게도 싹이 났다.

대지는 나에게 인내를 길러준다.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일찍 씨를 뿌려도 우주가 생명의 기회를 주지 않을 때는 꿈쩍도 안 한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 8월 말이 적기라고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작물들은 우리에게 기적을 선물한다는 생각이 든다. 흙 속에 씨앗 한 알을 심으면 어느덧 자라나 한 개체의 식물이 된다. 그것은 대지를 밟고 사는 모든 생명체에 에너지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생명의 경외감을 느낀다.

봄에는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은 생명이 성장하기 때문에 자주 텃밭에 가야 한다. 비가 내리는 늦봄은 1주일 만에 가면 주인 모르게 엄청나게 자란다. 면이 안 서는 느낌이 든다. 식물도 반갑게 맞이하지 않는 것 같다.

가뭄이 심한 여름날 오후 옥수수는 더위에 지쳐 축 늘어져 있다. 측은지심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옥수수밭에 물을 실컷 주면 옥수수 잎이 어깨를 올리고 “주인님, 감사합니다”하고 웃는 모습을 한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Pierre Rabhi)는 작물의 기적 같은 생명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신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단순한 농부라기보다는 생명의 신비를 느끼고 살아가는 철학자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농사짓는 방식도 중요하나 많은 생각이나 영감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계절이 지날 때마다 하나하나의 기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대전의 고택
힘내라! 중소기업
인물로 본 충남역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