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어느 할머니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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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어느 할머니의 기도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7.26 10: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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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조합원 댁을 방문하면 잠시만이라도 안으로 들어오기를 청합니다. 코로나가 극성인 요즘, 안에 들어가기는 조금 꺼려져서 망설이면 무척이나 섭섭해합니다. 봉지커피를 타서 주면서 자식이나 손주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생일은 오늘이지만 지난주 아들딸들이 다녀갔다고 흐뭇해합니다.

홀로된 할머니의 손을 만져보면 딱딱하고 모래알처럼 꺼끌꺼끌합니다. 80이 돼서도 손주들 학용품값이라도 주기 위해 꼬부라진 허리를 이끌고 오늘도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합니다.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손을 어쩌다 잡으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눈이 녹고 새봄이 오면 산나물이나 돌미나리를 뜯어 첫차를 타고 나가 대전역 새벽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계절이 익어가면 호박잎이든 고구마 줄기든 한 푼이라도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분은 계족산 줄기 노고산성 밑 하늘만 빼꼼하게 보이는 동네로 시집와서 지금껏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지나 친정아버지는 매파의 말만 듣고 시집 보낸 딸이 어떻게 사는가 보러 왔다가 하룻밤도 자지 않고 울면서 쇠점고개를 넘어갔다고 합니다.

이제 할머니는 그저 자손들 걱정만 하는 신세입니다. 오로지 자손들이 잘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손만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거룩합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기도하는 손'

언젠가 화첩에서 《기도하는 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작품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뒤러의 이 그림 속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습니다.

소년 뒤러는 화가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갑니다. 거기서 같은 꿈을 가진 소년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이내 친구가 됩니다. 그들은 둘 다 그림 공부를 하고 싶지만, 가난해서 학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상의 끝에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은 돈을 벌어 학비를 대주고, 이후 그림 공부를 마친 사람이 학비를 대준 친구의 뒷바라지해주기로 약속합니다.

먼저 공부를 하게 된 사람이 뒤러입니다. 친구는 약속대로 학비를 대주고 세월이 흘러 뒤러는 화가 수업을 마치고 금의환향합니다. 뒤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와준 친구를 찾아갔지만, 고된 노동으로 손이 굳고 뒤틀린 친구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친구는 뒤러의 앞날을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이 기도를 우연히 듣게 된 뒤러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친구의 손을 스케치하여 이 그림을 탄생시켰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 손만큼 신성한 것이 없습니다.

농촌 이곳저곳에 사는 연세 지긋한 어머니의 손은 기도하는 손입니다. 그 손은 성스럽고 위대한 손입니다. 기도하는 순간순간마다 속 깊은 뜻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하는 손이 가장 깨끗한 손이오. 가장 위대한 손이오. 기도하는 자리가 가장 큰 자리요. 가장 높은 자리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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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21-07-28 14:52:44
그시절...
어렵지않은 집이 없었으며,
학교가는 통학버스는 어머니, 할머니들의 보따리로
온통 발디딜 틈이 없었기에 버스 안내양은 출입문을
닫기위해 온몸으로 밀어 책가방은 누군지도 모르지만,
촤석에 앉은사람 무릎에 수북히 쌓아놓았고,
누구하나 가방을 놓았다고 뭐라는사람도 없었고,
잃어버리는 일도 없었는데...
그때 그시절 을 새록새록 추억하게되는 글입니다.

해태 2021-07-26 12:58:51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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