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장발장과 밀크플레이션
상태바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장발장과 밀크플레이션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8.30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에게 ‘장 발장(Jean Valjean)’의 이야기로 통하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등장인물 중 관심 있는 사람이 다르고 호불호가 뚜렷합니다.

당시는 막 시작된 산업혁명의 초기로 빈부의 격차가 심했습니다. 나는 등장인물 중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이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공장 노동자에서 밀려난 후 어린 딸 코제트를 위해 창녀로 전락한 그녀는 고단한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프랑스혁명에 참여한 코제트의 애인 마리우스의 시민군인 민중 혁명군에 시민들이 왜 냉정한 태도로 창문을 닫고 외면하냐고 물었으나 그런 장면이 있었나 의아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장 발장의 선행이나 미리엘 주교의 사랑을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장 발장은 아버지가 없어서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있는 일곱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로 체포되어 19년 동안의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미리엘 주교는 감옥에서 나와 오갈 곳 없던 장 발장을 불쌍하게 여겨 먹여주고 재워 주었지만, 장 발장은 은식기를 훔쳐서 달아납니다.

장 발장을 다시 잡아 데리고 온 경관 앞에서 주교는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뭐가 그리 급해서 같이 준 은촛대를 왜 안 가져갔소?”라고 연기하며 장 발장은 도둑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그에게 은촛대까지 내어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장 발장이라는 반사회적 성향의 사람이 크게 참회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장 발장을 끝끝내 쫓아 다니면서 감시하고 수사하여 감옥에 집어넣으려는 자베르 경감을 미워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마들렌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좋은 평판으로 시장까지 된 장발장을 자베르 경감은 ‘장 발장은 범죄자이며 반드시 범죄자를 붙잡아 수감하는 것이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경감으로서 정의감으로 정신무장한 그는 원리 원칙적이고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의 모범입니다. 다만 융통성이 없고 아주 차가운 인물이어서 주위에 사람이 없는 외톨박이입니다. 그를 동정 어린 눈길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의 긴 인생 동안 지배해온 공직자로서의 믿음은 한순간에 꺾이고 맙니다. 범죄자였으나 죄질이 나쁘지는 않았고 선의가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자베르 경감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최근 언론 기사에 밀크플레이션(Milkflation), 우유를 뜻하는 밀크(Milk)와 물가 상승이라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 자주 검색됩니다. 우윳값 인상이 빵이나 아이스크림, 커피 등의 물가를 연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낙농 진흥회가 최근 원유값을 이달부터 전보다 2.3%에 해당하는 21원을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일부 언론 보도는 고물가의 주범으로 찍고 있습니다. 정부 호소에도 낙농업계가 밀어붙였다는 뉘앙스의 기사도 적지 않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낙농산업 구조개선을 정조준하고 나섰습니다.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낙농산업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기획재정부도 정부 합동점검반을 편성하고 담합 정황 등이 발견되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게 하겠다는 태세입니다.

당국은 농축산품목의 가격이 오르면 물가만 생각하고 농가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관련 자재 품귀와 사료값 인상에다 외국산에 밀려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당국은 오직 가격 한쪽만 보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이 자베르 경감처럼 정의롭고 원리 원칙적이고 자기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여론에 치우쳐 전체를 파악 못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가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끝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해(利害) 양쪽을 다 봐야 합니다. 요즘 낙농가는 정말 어렵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