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은 참 이상합니다.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사라지면 나중에 잎이 나옵니다. 산수유도, 벚꽃도, 진달래도, 개나리도, 목련도 그렇습니다. 그중 벚꽃은 화려하여 누구나 혹하고 마음을 줍니다. 벚꽃이 필 때면 이런 일이 매일 있기를 바라고, 혹시나 낙화할까 봐 온통 일기예보에 신경 씁니다. 지금까지 경험했지만 어느 해 하루라도 같은 날씨는 없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한 번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는 길이 희망적이기보다는 두렵습니다. 시간이 지나 자식을 낳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성당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자매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이 생기자 하느님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지 못할 것 같아 성당을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지금의 행복이 어떻게 될까 봐 인생길이 두려운 것입니다.

광고인 박웅현 님의 글을 보니 그는 주례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살다 보면 좋은 순간도 있고, 힘든 순간도 있다. 좋을 때는 우리만큼 축복받은 사람이 없다고 하고, 힘든 날이 오면 힘들겠지만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사실 실패는 나와 먼 이야기이고, 불행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패와 마주하는 것이 다반사고, 작은 곤란에도 마음이 쓰입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으로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處世不求無難)’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중국 원말 명초(元末 明初) 때 묘협스님이 불자들에게 설한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입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벚꽃이나 인생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벚꽃이 낙화할까봐 바람이 불고 비가 오지 않나 걱정하는 것처럼, 인생도 실패할까봐 노심초사합니다. 자기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시대적 흐름이 자기와 맞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맘대로 되는 것은 한 가지도 없고,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제 인생철학은 고은(高恩)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장마철 급한 홍수에 떠내려가다 닿는 곳에 싹 틔우는 버들강아지와 같습니다. 험하면 험한 대로 그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 진학이 어려워 3학년 2학기 때 농협 시험을 보았습니다. 보기 좋게 낙방했습니다. 저에게 매우 큰 실망이었습니다.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하여 ‘공직이 나에게 천직이다’라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평생 공직의 길을 걸었습니다.

농사도 인생길과 같습니다. 누가 흉년이나 풍년을 장담할 수 있습니까? 농사는 하늘과 합작하는 일입니다. 농사의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허사입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흉년 때는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여기고, 풍년 때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기뻐하며 보내는 것입니다. 이제 흉년이 없기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bsn@bsnews.kr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