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사는 선의지(善意志)의 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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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사는 선의지(善意志)의 천직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3.17 09: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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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의 한 농사꾼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오래전 기사였지만 들을 만한 것이 있습니다.

“난 천박한 농사꾼으로 태어났지만 옳고 그름은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정직한 땅이 일러준 교훈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다가 가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이 대학을 안 가도 되고 가도 되는데 옳고 그름은 확실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살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행동은 못하더라도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옳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돕기라도 합니다.”

“과수원을 한 지 20년이 돼가는데 단 한 번도 내 입으로 가격 한번 정하지 못하고 쳐주는 대로 받아오는 도매시장 형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 농사 이렇게 짓는데, 내 꺼 이 정도 돈으로 사 먹으면 안 됩니까?’ 하고 여기저기 싸가지고 돌아다녀서 지금은 부산 소비조합과 인연을 맺어 계약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돈이나 지위, 명예를 존중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식대로 살아가는 분입니다. 고3 아들에게도 선의지(善意志)가 확실한 무서운 아버지입니다. 그가 흘린 땀만큼만 대가를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생산한 농작물 가격에 자기의 땀이 포함되어 있다면 자연스러운 이치고 보편적 상식입니다. 지금처럼 가격이 세상의 기구로 만들어지는 것은 농민들에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
임마누엘 칸트

평생 철학자로서 마음에 도덕률을 세우고 산 학자가 있습니다. 칸트(1724~1804)는 서양철학의 최고봉입니다. 동양철학은 선문답으로도 통하지만, 해부학 같은 논리로 말하는 서양철학은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의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에서의 윤리 개념은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경향성(傾向性)으로부터의 탈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이 도덕법칙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이 동물적 존재가 아닌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자유인으로서 특성입니다. 이것이 양심이고 인간다움입니다.

내가 ‘이렇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외부적인 강요 내지는 경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사유로부터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 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이 도덕법칙 즉 이성의 소리에 따르는 의지가 최상의 선입니다. 선의지(善意志)는 조건 없이, 예외 없이 이렇게 하라고 하는 양심 명령이고 자기 삶의 법입니다.

농사짓는 삶은 말로 사는 삶도 아니고, 머리로 사는 삶도 아닙니다. 몸으로 사는 삶입니다. 남과의 치열한 경쟁도 아닙니다.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을 경계하고, 땀을 흘린 만큼 다시 돌려주기에 혹시나 하는 편법이나 요행은 없습니다.

인터뷰에서 천박한 농사꾼으로 스스로 낮추었지만 농사를 짓는 일은 결과에 관계없이 농사를 짓는 동기의 순수성과 농사의 정직성으로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스스로 도덕법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선의지(善意志)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단한 중노동인 농사의 장점입니다.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저의 양심을 도끼로 찍는 충격을 주었습니다. 국가나 농협이 할 일은 선의지로 살아가는 농부에게 공정한 심판자가 돼서 그들을 응원하는 일입니다.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에 쏟은 열정이 담긴 ‘가치 있는 가격’이 매겨져 팔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바람이 있다면 나는 신(神)이 선의를 가진 사람을 지켜주고 있고, 그들의 영혼이 영구불멸하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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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21-03-17 13:37:47
신이있다면이 아니라
신이야 있든 없든,

선한 사람들의 세상으로
영구불멸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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