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벼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논둑길을 걸으면 멀리 황금벌판이 볼 만합니다.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노란색을 참 좋아했습니다. 농민 화가를 꿈꾸었던 고흐의 유명한 그림 중에는 추수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황금물결의 들판과 부드러운 능선의 산 모양이 평화로운 농촌을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맑은 가을햇살 아래 넓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밀밭의 풍경이 고흐의 눈에는 황금색 색채의 향연으로 보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화 《라크로의 추수》는 고흐의 인생 중 가장 행복하고 평온했던 시기에 그렸습니다. 고흐는 이 그림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을 위축시킨다”라고 고백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그림은 2003년 11월 뉴욕 소더비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103억 원에 경매되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습니다. 쌀농사도 30% 이상 수확이 줄었습니다. 빈 가을 들판에서 편히 쉬는 평화는 아니었습니다. ‘쌀 한 톤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까닭 없이 의문이 생깁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봅니다. 그 안에는 농부의 새벽도 농부의 꿈도 숨어 있고, 바람과 천둥, 비와 햇살도 스며 있습니다. 쌀 한 톨에 세상이 다 들어있습니다.
고 장일순 선생은 좁쌀 한 알 속에도 우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농부가 타작한 뒤에 마당에 콩 하나 팥 하나가 있을 때 그걸 집어서 모은다. 그 작은 콩 하나 팥 하나 속에 우주 전체의 힘이 들어있다. 만남이 거기 들어있고 생명이 있다.”
한 알의 쌀알이 영글기 위해서는 대지와 태양, 바람과 비, 그리고 농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이 우주가 하나의 큰 생명체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한 사람의 인생은 감동스토리 그 자체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은 평범하고 대부분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과 우여곡절이 숨어 있고 감동과 재미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사람의 스토리 듣는 재미로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긴 장마에 낭떠러지까지 몰렸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벼가 스스로 이 고난을 이겨낸 것이 대견합니다. 시련은 있었지만 패배는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덕으로 살아갑니다. 자연과 인간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라는 교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