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옥수수가 내 키보다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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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옥수수가 내 키보다 커졌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0.07.12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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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가 이제 내 키보다 더 커졌습니다. 3개월 가까운 시간에 절정기를 이루었습니다.

처음 씨를 땅에 직접 심었을 때 봄 추위인지 싹이 나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눈물 나도록 기다린 끝에 싹이 돋아났고, 봄이 떠나자 훌쩍 커 버렸습니다.

이쁜 것이 옥수수이구나. 키가 내 배꼼 정도 왔을 때 비료를 주었습니다. 이때가 청춘이었을까? 왕성한 먹성을 보입니다. 옥수수 뿌리를 보세요. 주위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기세입니다.

이제 언제 수확할까 그 시간을 재고 있습니다. 성인처럼 싱싱한 수염이 나고, 얼마 있으면 색깔이 짙어지고, 나중에는 조금씩 죽어갑니다. 그때가 수확기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입니다.

38세의 나이에 법관에서 은퇴하고 20년간 골방에 앉아 자신을 대상으로 인간을 탐색하고 성찰한 몽테뉴(1533~1592)는 《수상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히파니스강에는 단 하루를 사는 작은 벌레가 있다고 한다. 아침 8시에 죽으면 요절한 것이고 저녁 5시에 죽으면 장수한 셈이다. 이처럼 짧은 생애를 놓고 행복과 불행을 따졌다면 우리 중에 비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옥수수를 생애를 보면 어쩌면 인간과 같을까요? 인간처럼 옥수수도 성장하는 동시에 쇠퇴합니다. 그래도 옥수수는 행복합니다. 인간처럼 끝까지 살지 못하는 옥수수는 거의 없습니다.

인간은 제아무리 신중을 기한다 해도 위험에 충분히 대비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몽테뉴는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을 신고 채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애써 거부합니다. 죽음은 생각하기 싫어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연회와 같은 큰 잔치에 망자의 마른 해골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곤 합니다. 죽음을 인식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영겁의 시간에 비추면 인간의 삶도 찰나(刹那)에 불과합니다. 짧은 생애에서 얼마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삶에 전념해야 됩니다.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삽니다. 담담하게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옥수수가 끝나면 다시 다른 농작물이 옥수수를 거름 삼아 자랍니다. 인간도 이처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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