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사는 하늘이 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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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사는 하늘이 준다고 합니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0.07.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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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들어서니 비가 자주 옵니다. 거의 일주일 내내 오기도 합니다. 복숭아는 비라면 젬병입니다. 복숭아 맛이 물과 같습니다.

얼마 전 조합원이 하나로 마트에 복숭아를 팔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당도가 5브릭스(Brix)도 안 나옵니다. 최하 8브릭스는 돼야 하는데 이럴 때 참 난감합니다.

현장에 있던 그 조합원은 도로 가지고 가겠다고 자진하여 말합니다. 봄에는 냉해를 입어 마음고생 크게 했는데 키워 놓으니 이젠 비가 와서 이 모양 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천근만근입니다.

고객을 생각하면 또 어쩔 수 없습니다. 손님들이 맛이 없다고 복숭아 반품도 들어옵니다.

농사는 하늘이 준다고 합니다. 냉해다, 더위다, 집중호우다, 전부 하늘이 주는 행위입니다. 결국 농사는 운(運) 7, 기(技) 3보다 운 9, 기 1에 가깝습니다. 운(運)은 하늘입니다.

주역(周易)을 공부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중천 건(重天乾)입니다. 우주는 음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음은 곤(昆) 땅이고, 양은 건(乾)으로 하늘입니다.

중천 건(重天乾)은 건(≡)괘를 둘 겹쳐 놓은 것입니다. 건은 하늘의 의미로 만물을 시작하는 근원이고, 만물을 성장시켜 형통하게 하고, 만물을 촉진시켜 이롭게 하고, 만물을 완성시켜 바르게 한다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실상 하늘의 뜻은 측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습니다. “히말라야 설(雪)산의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동상(凍傷)이 아닙니다.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이 준 결과를 자기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탓이 아닙니다.

주역은 하늘의 뜻에 맞게 사는 길을 제시하는 경전입니다. 하늘의 뜻을 본받아 세상에 도를 바로 세우겠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항상 친절하고 웃음이 있고 조금이라도 베풀려고 하고 책도 보면서 간간이 텃밭을 가꾸는 은퇴한 공무원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사는 인생이 좋아 보이길래 질문을 던졌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잘 사는 것이라…. 인생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고, 비가 오는 날도 있고, 태풍이 부는 날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게 좋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대신 앞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하늘과 같은 이상(理想)과 땅과 같은 현실(現實)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울고 웃고 행동하며 변화하는 삶입니다.

뒤돌아서는 조합원에게 위로의 말로 무엇을 말할까 망설이다 끝내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야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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