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인간과 오이는 같은 통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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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인간과 오이는 같은 통속입니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20.07.24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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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에 오이는 하루가 다르게 큽니다. 요즘같이 장맛비가 내리면 오이는 길고 잘빠진 형태로 파란 색깔이지만, 장마가 끝나고 뜨겁게 타는 무더위에는 오이는 작고 황금 색깔로 변합니다. 오이가 순조롭게 성장할 때와 고난이 있을 때 서로 다르게 자신의 삶의 흔적을 보입니다.

소위 환경이 좋은 곳에서 자란 나무는 무른 듯하고 향기도 없지만, 메마른 곳에서 자란 나무는 단단하고 향기롭습니다. 절벽 위 바위틈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내놓고 살아가는 소나무를 보십시오.

좋은 곳에서 자란 나무는 뿌리를 깊이 박지 않아도 되지만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나무는 뿌리를 깊게 박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삶의 나이테가 되기도 하고 향기도 아름다움도 만듭니다.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의 《사기》는 상고시대부터 사마천이 살던 한무제 때까지의 중국 역사를 다룹니다. 《사기》는 동양 역사의 근간입니다. 주변 역사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중국뿐 아니라 우리와 일본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기》는 사마천이 사관에 입각하여 기록한 최초의 역사서입니다. 더욱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처절한 인간적 고뇌를 통해 이루어진 산물입니다. 사마천의 삶과 《사기》는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당시 한무제의 사관이었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역사서를 집필하라는 당부를 하고 일부는 사마담이 죽기 전 체계를 세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은 큰 위기에 봉착합니다. 당시 장수 이릉(李陵)이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투항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마천은 당시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적극 변호하였으나 생각 외로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에 처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죽거나 50만 전의 벌금을 내거나 아니면 궁형(宮刑)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거액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여 결국 궁형을 선택했습니다. 역사서를 쓰라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내대장부에게 생식기를 없애는 궁형은 목숨보다 더한 치욕입니다. 그는 처절한 고통을 안고서 20년 동안 《사기》를 집필합니다.

《사기》의 큰 특징은 왕후장상(王侯將相)만이 역사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기》는 인간학의 보고입니다.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온갖 인물 군상의 집합소입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홀로 적진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은 자객열전(刺客列傳)도 있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돈을 버는 방법을 언급하는 화식열전(貨殖列傳)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유교문화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그의 참혹할 정도의 고통과 시련은 엄혹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하게 했습니다. 치욕을 당하고도 이름을 떨친 관중(管仲) 같은 사람이나 공자와 같은 춘추(春秋)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식도 자리 잡았습니다.

‘문자향(文子香) 서권기(書卷氣)’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 속에 책 속에는 한 인간의 살아온 발자취가 있습니다. 인간과 오이는 같은 통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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